어린 시절 주산 학원을 다녔다.
상장은 개근상, 독서상, 노력상 등의 공부머리보다는 노력에 비추어진 상장만 받았던 기억이 나는데
어머니의 열성적인 뒷받침으로 주산으로는 여러상을 받았고, 3학년 때는 드디어 초등부 대상을 받게 되었다.
그리고, 그때 이후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.
30여년이 훌쩍 지난 버린 지금.
어느 날 아들이 수학 셈을 하는 도중 나에게 질문을 한다. 수셈에 대해서.
나도 모르게 엄지 검지를 움직여 계산을 했는데, 생각해보니 이게 주산 학원에서 주판을 이용해 덧셈을 하던 방식이 아닌가.
순간 신기했고, 그 순간의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서, 부모님 집에 들러 30여 년 전 내가 쓰던 주판을 다시 찾았다.
나무로 된 내 주판은 낡고 부스러진 부분도 보인다.
하지만 어머니가 곱게 정성들여 만들어주셨던 주판 집을 보니,
고사리 같은 손으로 주판을 튕기던 나의 모습과 주산 학원에 매일같이 동행해주셨던 어머니의 모습이 교차된다.
그 시절, 주산 학원에서는 아이들에게 수업전 몸 풀기? 손가락 풀기로 125, 165, 365를 연습시켰다.
교실을 꽉 채운 아이들의 빠른 손놀림으로 이내 학원은 짹짹짹 짹!!!! 하는 주판알 소리로 가득 찼다,
난 지금 다시 125를 튕겨본다
그때처럼 빠르진 않지만, 손가락은 기억한다.
주판알들은 위로 위로 올라가며 셈을 더 해 간다.
반복된 나의 패턴 훈련은 나를 다시 30년 전 그곳으로 데려다주었고, 어머니의 회상을 떠올려주었다.
가슴이 먹먹해진다.
며칠 후, 난 새 주판을 샀다.
주판은 그 시절의 나무는 아니고, 플라스틱 재질이다
내 구성은 튼튼했지만, 예전의 짹짹짹 짹 소리가 날지는 의문이다. 그리고 그 시절 주판 특유의 향도 없다.
하지만 난 다시 125를 놓아본다.
초등학생인 아들은 3년째 바이올린을 배워오고 있다.
전공을 할 것은 아니지만, 제법 흥을 느끼며 내 곁에서 간혹 연주를 해준다.
바이올린은 손가락을 자신이 볼 수 없는 구조이지만, 손가락이 감각한다는 점에서 주판과 유사하다.
이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,
주판의 기억처럼,
바이올린이 아들에게 스스로 위안과 소소한 행복감을 가져다주는 그런 아들만의 도구가 되길 바라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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